의료

의학생들의 국시거부에서 나타난 문제점

파랑새호 2020. 9. 26. 22:57

의료계의 반정부투쟁은 의사나 전공의만 참여하지 않았다. 의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이나, 의과대학 학생들(이하 의대생들)도 참여했다. 이들은 9일 현재도 여전히 국가의사시험을 거부하는 중이다. 의사협회나 전공의들의 투쟁은 정부와 합의로, 또 투표를 통해서 사실상 중단했지만, 학생들은 아직 투쟁중인 셈이다. 시험거부라는 것은 의대생들이 아예 의사라는 전문직을 포기하겠다는 판단을 전제로 한다. 이는 의사라는 전문직이 되기 이전에 반정부투쟁에 매진하여 잘못된 정책을 막아보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학생들이 이렇게 시험마저 거부하며 투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체로 의사협회나 전공의들의 입장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구체적으로 의대생들의 주장을 확인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투쟁에서 학생들이 무엇을 주장하는 지는 분명하지가 않다. 학생들의 유인물 등을 참조해야만 하는데, 파업도중에 나온 의대생들의 유인물은 대개 파업지속을 주장하는 감성적 내용들이 전부 다였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조승현이라는 대한의과대학 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이하 의대협’)회장의 619일 인터뷰가 그나마 학생들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사실상 본격적인 파업이 시작되기 전 인터뷰이지만 이후에도 이런 내용이상의 유인물이 나오지 않았다. 조승현은 의대교육의 질을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의대생 정원을 늘리고 공공의대를 확충한다면 교육의 질이 떨어질 것으로 우려,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교육권이 침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공공의료 확대 기조 자체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어떤 것이 공공의료이며, 왜 공공의료가 부족하다고 주장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현재의 수준에서 공공의료 확대의 필요성을 반대했다.

 

의대생들의 위의 두 가지 제기 사항 첫째, 의대교육의 질 저하, 둘째, 공공의료의 확대 필요성 부족이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일단 전제해보자. 첫 번째 문제는 한국 의대생들이 현재 받고 있는 교육의 수준이 낙후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검증과, 의대 정원을 늘릴 경우 혹은 별도의 의대를 신설할 경우 교육의 수준이 더 낙후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한 검증이 이루어져야 한다. 의대생들은 교육의 질을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기자재 부족과 교수인원 부족을 거론 했다.

 

만일 의과대학 증설이나 의대정원 증가가 특정 학교법인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학생들의 문제제기는 있을 수 있다. 사립대학의 경우에는 학교법인에서 우선 책임져야 할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국가전체로 확대했을 경우에는 문제가 다르다. 단순하게 판단해서 학생이 증가하면 기자재나 교수는 더 모자랄 것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일부에서는 폐교한 서남대의 사례를 근거로서 제시한다. 그렇다면 어떤 국가에서 특정 영역을 집중 육성할 때 관련인원을 늘리지 않고 가능한 것인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국가의 집중과제라고 하는 것은 예산 투입액이 많아진다는 것이고, 예산의 증가는 곧 시설과 인력의 확충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문제의 한 쪽 측면만을 보고 이를 극대화했다. 말하자면 의사 증원이나 의대생의 증원은 양면성을 지닌다. 학생들의 주장대로 교육부실의 가능성도 있지만, 오히려 이를 계기로 의과대학의 교육의 질이 개선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학생들은 한쪽만을 극대화 시켰다.

 

그렇다면 남은 두 번째 문제 즉 한국의 의료 환경이 공공의료가 지배적인가 하는 점, 혹은 공공의료의 개념정의는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학생들은 일단 한국의료에 대해 공공의료의 성격이 지배적이라고 판단했다. 의사 수 증원에 대해 반대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런 주장도 구체적인 근거 제시는 상당히 미흡하다. 공공의료의 기관수나 병상수 비중, 혹은 공공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의사 수 등의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지도 않았고, 결정적으로 자신들이 판단하는 공공의료의 개념에 대해서조차 제시하지 않았다. 학생들의 주장은 대단히 감성적일지언정 논리적 근거는 취약하다. 예컨대 학생들의 논리를 뒤집어 해석하면 만일 한국의료가 공공의료의 성격이 지배적이지 않다면 의사 수 증원은 필요하다는 논리가 된다. 문제의 본질이 한국의료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에 있음은 분명하지만, 학생들은 막상 필요한 내용에 대해 치밀하거나, 구체적이지 않았다.

 

구체성 부족에 대해 학생들은 아직 한국의료의 현장에서 구체적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라고 옹호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의료의 본질, 한국의료의 방향 등에 대한 가치판단이 학생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학생들에게는 직업현장에서 경험하기 이전에 가치교육이 필요하다. 가치라는 것은 원래 본질에 대한 인식이요, 보편성에 대한 인식을 전제로 한다. 이는 의료기술의 측면보다는 의료의 역사, 의료의 철학 등 인문학적 과정에 속하는 문제이다.

 

의료를 논의하는 데 가치에 대한 판단이 중요한가? 특히 학생들에게는 그렇다고 본다. 의료라는 영역은 특정인이나 집단의 소유가 될 수 없고, 본질상 사회적이기 때문이다. 의사를 비롯한 모든 전문가는 전문성전문가의 윤리를 동시에 구현하지 않는 한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할 수가 없다. 전문성만 있고 전문가의 윤리를 결여한 사람을 우리는 전문가라고 칭하지 않는다. 막스베버의 표현을 빌리면 가슴이 없는 전문기사로서 언제나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에 불과한 것이다.

 

이럴 때 중요한 영역이 철학이다. 철학은 원래 사실로 총칭되는 현실의 정당성과 합리성을 묻는 작업이다. 화이트헤드는 [사고의 양태]라는 책에서 사람의 의식은 중요성+사태의 종합이라는 표현을 했다. 이것은 쉽게 말해 세상에 단순한 사실이란 존재 하지 않으며, 언제나 우리의 의식이 작동해서 사실을 파악하는 가치+사실의 통일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또한 플라톤은 독사(doxa)와 에피스테메(episteme)의 비교를 통해 본질적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독사’(doxa)는 바로 피상적인 견해로서, 주관적이며, 사물의 겉모습(현상)으로만 파악하여, 근거를 갖지 못한 판단이다. 반면 에피스테메(episteme)는 본질(우시아; ousia)에 도달하는 관점, 필연성과 보편성을 획득하는 관점이다. 전문가가 전문가인 이유는 본질에 대한 이해를 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존재 자체의 본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한국 사회의 의료 문제를 논의할 때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한국의료의 전체적인 상황과 이를 관통하고 있는 본질적 문제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에 있다. 이런 면에서 의사 수는 중요한 범주의 하나이지만, 의료의 모든 영역을 의사 수 하나의 기준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의사 수를 늘리겠다는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굳이 평가한다면 전체성을 결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소위 문재인 케어등으로 한편에선 보장성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질병관리청 승격 등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측면에서 일방적으로 비판만은 할 수 없다.

 

한국의료의 문제를 논의할 때 거론되는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1) 건강보험의 보장성 부족, 2) 민간의료보험 시장 확대로 인한 소비자 보험료의 증가, 3) 의료의 영리화 추진, 4) 의료전달체계의 혼란과 그로인한 보험재정의 증가, 5) 건강보험 수가의 상대적 저수준, 6) 환자권리의 취약성. 이런 내용은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와 함께 신종플루,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7) 현대의 전염병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공공병원의 확대가 보편적인 인식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8) 일차의료의 확대도 주요한 과제로 대두하였다.

 

의대생들은 한국 의료의 문제를 전체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한 면 만을 보고 파악했으며, 이는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인문학적 소양의 부족이나 가치판단의 편향성으로 인한 것이다. 헤겔은 진리는 전체이다.”고 주장하면서 사태 자체를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진리는 때가 무르익을 때라야만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며 그 이전에는 나타나는 일도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미숙한 독자를 만나는 일도 없을 것이다.”(이상 정신현상학) 지금 한국 의대생들에게 필요한 과제는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보편정신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에 있다.

 

[작은책], 2020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