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연극

강정구와 동막골

파랑새호 2005. 10. 22. 09:32

  나는 강정구교수의 글을 읽어본 적이 없다. 다만 강준만교수가 펴낸 [세계문화사전]의 '학문의 주체성'이란 항목에서 강정구교수의 또다른 글이 인용된 바 있다. [세계문화사전]에 인용된 강정구교수의 글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 ....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 강정구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역사성에서 생겨날 수 있는 '뜨거운 가슴'까지 옹호했다. 그는 2000년에 출간한 [현대한국사회의 이해와 전망]에서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머리 사이의 조화로운 결합'이라고 하는 상투적인 문구는 "다분히 선진자본주의 부르주아 학자들에 걸맞은, 따라서 편향된 학문자세를 보편화 하는 주장"이라면서 역사의 특수성을 강조했다.

  "이런 학문자세는 제국주의의 지배와 예속하에 신음해온 제3세계의 민족사, 특히 우리나라 학문을 국적 없는 학문으로 실종시킬 위험성을 안고 있다. 필자가 한국전쟁 당시 미국이 감행한 것으로 확신하고 있는 세균전에 과한 논의를 처음 접했을 당시는 냉철한 이성보다는 달아오른 심장의 고동으로 인해 내 자신을 잘 가눌수 없는 지경이었다. 이런 뜨거운 가슴의 홍역에 일시나마 걸리지 않고는 역동적인 우리나라 현대사의 흐름을 민족 중심으로 분석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더라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상 [세계문화사전] 594쪽 - 595쪽, 강준만 저, 인물과사상사, 2005년 발행) 

 

  엊그제 100분토론에서 천정배 법무장관과 안상수 한나라당의원의 토론을 보면서, 또 강정구교수를 '스타'로 만들고 있는 언론을 보면서 나는 영화 '동막골'이 생각났다. 필자가 보기에 동막골은 엄청난 이데올로기 영화이다. 영화는 평화로운 동막골의 소녀가 미군과 작전을 짠 국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면서, 인민군과 국군이 그간의 갈등을 벗어버리고 미군 폭격기를 향해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 같이 투쟁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영화를 볼때 이 죽임을당한 소녀를 보고 누가 정신병자라고, 혹은 조금 모자란다고 손가락질 하겠는가? 소녀와 동막골은 강대국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린 우리민족을 상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민군과 국군이 합세해서 미군에 대항하는 과정, 그 엄청난 미군 폭격기에 거의 맨손으로 대항하는 과정이 하이라이트를 이룬다. 헉!,  만일 누군가가 " 북한과 남한이 합세하여 미국놈 몰아내자"고 했으면 그거이 국보법위반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름다운 우리강토에서 미국놈 몰아내자"고 주장했으면 그거이 국보법 위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대중들에게 미치는 사회적 파급력으로 볼때 강정구교수 개인의 주장이나 저술이 크겠는가? 영화가 크겠는가? 두말하면 잔소리다. 검찰에서 볼때 동막골은 국가보안법하고 상관없다. 왜냐하면 "미국놈 물러가라"는 말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명시적으로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국가보안법의 문제가 "명시적인 표현"에 대한 문제라면 그것 자체로서 국보법은 사람들의 입에, 머리에 재갈을 물린다는 점이 확인된다. 사람사는 문제는 명시적인 표현이 아니고 실제 세력이나 지향하는 바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한쪽에서는 엄청난 남북화해, 남북의 상호인정, 남북의 상호교류가 이루어지고 있고, 한쪽에서는 "멸공"과 "반공", 국가정체성을 거론하면서 입도 뻥끗 못하게 만드는 그런 사회이다. 한편에선 '동막골'이라는 "국가정체성"을 뒤흔들고 있는 영화를 수백만이 보면서도, 다른 한편에선 선거는 보수적인 색채를 혹은 안정적인 색채를 좋아하는 대중들을 의식한 정치세력에 의해서 이념공세가 언론에 의해 대서특필되는, '졸라' 헷갈리는 이 지긋지긋한 상황에 익숙한채 살아가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 한국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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