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등산을 '성공한 인생'에 비유하곤 한다. 어렵게 정상에 올랐을때의 그 성취감이나, 정말 힘들게 오르곤 난 후 맛보는 상쾌함, 등등 어려운일을 겪은 후 맞게 될 즐거움으로 곧잘 비유한다. 저기 저 곳에 정상이 있는데 지금 힘들다고 여기서 중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아무리 작은 산이라도 정상에 오르기는 힘들다면서 정상예찬론도 있다. 단풍놀이가 한참인 요즘엔 더욱 이러한 등산의 의미가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어 단풍구경을 하면서 정상에 오르면 더욱 즐거움이 배가된다는 말도 있다. 또한 산은 "오르라고"있기 때문에 등산을 한다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일종의 숙명처럼 받아들이라는 이야기도 된다.
오늘 나는 그와 같은 등산의 비유가 변할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산은 정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평지 초입에 있는 산도 산이요, 중간쯤 올랐을때 딛고 서있는 곳도 산이고, 중간쯤 올라갔다 내려올때 딛는 곳도 산이다. 산은 산이지 평야나 강이 아니다. 산을 진정으로 즐기는 이유는 정상에 오르기 위함이 아니요, 산에서 만나는 자연과 접하기 위해서이다. 산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큰 휴식이 되고, 친구가 되고, 세계가 된다. 정상에 오르는 사람을 나무랄 수는 없지만, 정상에 오르는 것만이 등산이다는 개념, 혹은 정상에 오르지 않았을 때 웬지 모르게 마침표를 찍은 것 같지 않은 그런 기분은 인간이 만들어낸 관념이다. 산은 그냥 그 모습 그대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같은 생각은 어쩌면 나약해 진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 언제나 정상에 오르지 않으면서 스스로 합리화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아 나도 저 높은 산에 올라갔다 온적이 있다는 생각을 할 때는 웬지 모르게 자신이 대견하기 조차 한 그런 생각을 못하는 사람만의 넋두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산에 올랐다고 해서, 정상에 섰다고 해서 누가 그 사람을 자신의 인생을 살아줄 특별한 사람으로 보겠는가? 정상에 오르는 행위는 개인들이 갖는 좋은 기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산을 즐기는 방식은 사람마다 여러가지 이고 그 방식 모두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성공을 위해서 오직 성공이라는 정상을 위해서만 서술된 잡다한 책, 에베레스트와 기타 세계의 여러 높은 산을 정복해서 화제가 되는 산악인 등 우리 주위엔 남들이 하기 어려운 일을 성취한 사람을 마땅히 존중하고, 칭찬하는 미덕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공하거나 높은산을 정복한 산악인이 우리 모두의 인생을 살아줄 수도 없고, 그사람과 똑같이 살수도 없다. 자연은 오직 수천의 생명에게 단 한번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반복되는 삶이란 없다. 컴퓨터에서 예쁜 그림이나 사진을 따붙이기 하듯 인생을 그렇게 복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상에 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상에 오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고,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도 있고, 아예 정상 생각은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저마다 하나의 인생이요, 하나의 등산이다.
등산은 산과 만난다는 점에서 너무도 아름답고 소중한 행위이다. 산과 만난다는 것이 꼭 정상에서 만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늘 산과 만날때 아래부터 만난다. 누구나 만나는 곳이라 그곳이 산이 아니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