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형 생산방식, 그 가능성을 찾아서 ], 이영훈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2005
이 책의 저자는 일본 도요타의 적시생산방식(Just in time), 미국의 포드시스템에 비견할 만한 한국형 생산방식이 우리에겐 아직 없다고 지적한다.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6시그마도 미국의 경영이론이라는 것이다. 즉 저자의 주장은 정확하게 표현하면 "생산현장이나 경영현장에서 적용할 순수한 한국형 경영이론'이 없다는 주장이다. 한국형 생산방식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저자는 " 제도를 직접 만들고 개선시켜 본 기업들은 기업의 상황에 맞게 적절한 형태로 다듬고 발전시킬 능력이 있으나, 외국모형을 도입하여 우리의 기업상황에 적용하며 효과를 얻는 일에 집중하는 기업은 이를 진정으로 자기것으로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이같은 지적은 때늦은감이 있지만 일면 타당하다.
저자는 주장하기를 외국의 경우와는 달리 한국에서 일을 잘한다는 것은 " 주어진 일을 규칙에 따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나름의 방법론을 구축하여 수많은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한다. 외국에서는 일정한 규칙에 의하여 자신의 업무영역을 분명히 판단하고 일을 진행하는 데, 한국에서는 일정한 융통성과 동적 메커니즘이라는 "고유한 업무 패턴"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점을 충분히 살리는 이론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말하자면 한국형의 장점일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한국의 경우 프로세스가 불분명하다는 단점도 있다고 주장한다. 즉 "생산방식에 대한 문제는 대부분 과정의 문제이자 프로세스의 문제이고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문제"이지만, 한국의 경우 그 프로세스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업들, "삼성이나 현대, 엘지, 포스코 등의 핵심 프로세스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으며, 또한 이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많지 않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프로세스는 진정한 프로세스로 남지 못한다. 프로세스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도 프로세스의 실체와 방식을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우리에겐 스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형화된 프로세스"가 필요하다고 덧붙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모든 경영이론이 외국의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저자의 말대로 "정형화된 프로세스"를 갖추면서, 한국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유연성"을 확보한 경영이론이 나온다면 좋은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저자는 아주 중요한 영역을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한국'이라는 사회에 대한 개념규정이다. 한국의 대기업이 엄청나게 발전을 했고, 세계 유수기업과 경쟁하여 우위에 서기도 했지만 도대체 그들이 한국을 표현하고 있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오히려 한국의 대기업들은 외국의 이론으로 외국의 생산방식으로 커 온 기업들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한국형 생산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저자가 주장하는 한국형 생산방식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일부 대기업의 생산방식'이다. 즉 저자의 관점은 전적으로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어떤 대기업에서 한국형 생산방식에 대한 정형화된 이론을 만들면, 이것이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유행할 수 있다고 보는 그러한 관점이다. 그러나 정작 한국형 생산방식이 필요한 영역은 중소기업의 영역이다. 외국인 노동자나 비정규직이 없으면 단 하루도 운영될 수 없는 한국 중소기업의 회생을 위해서 한국형 생산방식은 필요하다.
우리는 가끔 삼성이나 현대자동차, 포스코 같은 기업이 잘 나간다고 해서 그들의 자본축적이 관치금융이나 중소기업의 착취로 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오늘 양극화된 간격이 점점 더 벌어지고 만 있는 한국사회에서 한쪽에 대해선 전혀 고민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한국형' 운운하는 것은 '그들만의 리그'를 꿈꾸는 사람들의 말장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