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고등학생이 된 아들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하는지 망설여진다. 마누라는 아이들 성적에 대해서, 좀더 세련되게 이야기하면 아이들의 교육문제에 대해서 아빠로서의 의당 해야할 역할마저 하지 않고 있다고 질책하고 있다. 그러면서 정말이지 너무나도 듣기싫은 옆집 아빠의 가정적인 생활들에 대해 침을 튀기며 이야기를 한다. 아이들의 학과목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고 더군다나 논술을 직접 가르키고 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항복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교육부 공무원이 된 그 '옆집 아빠'는 역시 고등학생 아이의 논술 교육을 아이친구와 함께 일요일에 집에서 아주 자상한 태도로 시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옆집 아빠'를 경의롭게 바라본다. 사실이지 직장생활하는 것도 힘든 마당에 어떻게 아이들 학업까지 지도하고 있는가 말이다. 마누라는 마지막 말을 항상 이렇게 끝맺곤 한다. " 자기 혼자 책 많이 읽으면 멀해, 도대체 책보고 멀 배우는 거야"
아들이 중학교를 졸업했을 때 난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지 곰곰 생각했다. 내가 학교를 다닐때와 달라진 게 거의 없는 학교생활, 그속에서 또다시 성적 지상주의에 물들어 있는 이 사회가 나에게 강요하고 있는 부모의 역할, [학벌사회]라는 책을 읽으면서 정말이지 나는 대학교가 평준화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정말이지 나는 물리 한 과목에 무려 50만원을 달라는 과외선생의 요구를 들어줄 수가 없다. 그러나 다시 정신을 차려보면 우리 아들에게 나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 좋은 대학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너의 선택폭이 넓어진다. 우리 사회는 좋은 대학 들어간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많은 선택의 기회를 주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협소할 수 밖에 없는 삶이 기다리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아이의 반응은 의례 부모니까 어른이니까 하는 이야기로 치부하는 것을 나는 직감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 할수 밖에 없는 내가 너무 한심스럽기도 하다. 다른 말은 없을 까 ? 노동이 얼마나 중요하고, 인간의 생업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에 대해 더 많은 시간할당을 하고 싶다. 그러나 아직 고등학생이기에 좀더 채찍질 해야한다는 예의 부모스러운 생각도 한곳에서 스멀스멀 살아난다.
내가 대학생 때 지금은 돌아가신 여성선배의 집에 밤 늦게 같이 들어간 적이 있다. 그때 선배의 아버님은 선배에게 좀 일찍 다니라고 야단을 치셨다. 나는 의례껏 선배가 "알았어요"라는 대답으로 사태를 진정시킬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선배는 아주 정색을 하면서 "지금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미안해 하셔야죠. 아버지세대에서 잘 못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늦게 까지 활동해야 하잖아요." 그 선배의 아버지는 이 말이 떨어지자 아무 말씀을 하지도 않고 그냥 방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선배 아버지는 '전향'한 남로당원이었다.
나는 언젠가 내가 이런 이야기를 들을 것 같다는 망상에 휩싸여 있다. 거의 강박에 가까운 상태로 언젠가 우리 애들이 나에게 이야기할 때 선배 아버지와 똑같이 아무말 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릴 것인가? 그때 나의 심정은 어떨까? 과연 애들에게 반박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문다. 20대의 청춘을 민주주의에 투신하고, 30대의 활력을 진보에 쏟아붓고, 붓다가 정신차려보니 40대의 중년생활을 아이들의 뒷바라지와 생활비 벌이는 남자의 기본이라는 미명하에, 결국 이 험난한 신자유주의 시대에 그나마 나같은 가난뱅이들이 직장생활에 살아남는 것도 큰 일이다는 허울좋은 명분으로 직장생활에만 전념하고 있는 나를 도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우리아이들에게 내가 살아온 모습은 불가해한 모습이거나, 식민지의 '창백한 지식인'이거나 지극히 불안한 소시민이다. 너무나도 자본주의 적인, 너무나도 속물적인 전향한 좌익이라고 손가락질 할 것이다.
나는 물리가 어렵다는 아들의 이야기를 마누라로 부터 전해들었다. 고백하지만 나는 고등학교때 '문과'였고, 과학계통의 과목은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생물'과 '지학'만 배웠다. '물리'교과서는 전혀 본적이 없다. 그렇지만 나는 아들의 물리교과서를 봐야만 했다. 무언가 아들의 성적향상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아빠로서의 강박관념으로, 물체의 속도와 운동과 귀납과 연역이라는 단어가 아주 간단 명료하게 서술되어 있는 교과서를 훑어 보았다. 그리고 아빠랑은 안한다고 지 엄마에게 박박 우겨대는 아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아주 잠깐 고민도 했다. 집안의 모든 화제가 성적이 되고, 이웃과 만나는 상황에서 모든 화제가 성적이 되는 그런 사회에서 부모의 역할이라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성적향상에 도움이되고, 성적향상을 위해 지원하는 것이다. 다른 무엇도 다 뒷전에 두라. 일단 성적을 올려놓으라. 그래야 부모로서 제대로된 역할 을 한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아직 부모세대에 달성해야할 시대적 과제를 달성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렇다면 자식들이 자본주의적으로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필수인 좋은 대학을 보장하는 성적향상에 대해서도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괴롭다. 결국 어떤 부모의 역할도 내 힘에 부친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