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사는문제

두발제한

파랑새호 2006. 4. 24. 09:30

  어제 저녁을 먹으면서 아들이 말했다. 며칠 전에 탈북여성이 학교에 와서 강연을 했는데, 북한은 연예인도 없고, 모든 것이 김일성 부자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요지의 내용이었다고 했다. 남북한이 공존과 화해를 바라는 마당에 탈북자가 고등학교에 와서 북한에 대한 구시대적인 반공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그런데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인가 보다. 문제는 강연이 끝나고 학생들의 질문시간이 있었는데, 첫 번째 질문이 “북한에도 학생들에 대해 두발규제가 있는가?”였단다. 강연을 한 탈북여성의 답변은 “없다”였다고 한다. 아들은 이 점에 강조를 했다. “심지어 북한에도 두발규제는 없다.”

 

  필자는 항상 덥수룩한 아들의 머리를 바라보면 “너는 짧은 머리가 어울린다. 왜 좋은 인상을 스스로 망치고 다니냐?”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아들은 필사적으로 깎는 시기를 최대한 늦추어 답변한다. “시험 끝나고 깎을 거예요.”(시험은 약 한달 정도 남은 기간이었다.) 아들의 친구들이 집에 왔을때 나는 그들의 머리가 한결같이 덥수룩하다는 것에 놀랐다. 필자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소위 “바리깡 단속”이 있었다. 머리가 조금만 자라도 학생부에서 바리깡으로 머리 한가운데를 밀어버렸다. 모자를 푹 눌러써도 깎인 머리가 드러났다. 바리깡으로 깎일망정 절대 머리를 스스로 자르지 않은 친구도 있긴 했지만, 당시에는 어찌되었든 지금 학생들의 머리보다는 짧았다. 늘어났다고 하지만, 필자가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25년이 흐른 지금과 비교할 경우 고등학생들의 머리카락은 그때보다 2.5센치미터 수준 늘어난 것 같다. 1년에 1밀리미터가 늘어난 셈이다. 한겨레신문 사설에서도 학생들에 대한 “머리칼 제한”은 “병영식 교육형태”이며, 심지어 “폭력적인 관행”이고, “아이들을 억압적인 문화속에 가두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어른들이 우려하는 것은 이런 점이다. 즉 내가 사는 상계동 노원역 주변에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카페에서 담배를 피며 술을 사 마신다. 일부 어른들은 얼핏봐서 그들을 학생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없다고 강변한다. 필자의 눈에는 늘 학생은 학생처럼 보이지만 일부 어른들의 눈에는 구별이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러할진대, 머리까지 제한이 없다면 대학생과 어떻게 구별하겠는냐는 것이 두발제한을 하는 어른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어른들이 학생들에게 구별이 안되기 때문에 담배와 술을 판다는 이야기도 금시초문이지만, 단지 학생이라는 구별을 머리카락으로 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실소를 금할 수 없다. 필자고등학교 때(그 시기는 앞서도 말했지만 소위 ‘빡빡머리’시절이다)화장실에서 숨어서 담배피던 학생들이 있었다. 그때 담배피던 그 학생들의 비중과 요즘 담배피우는 학생들의 비중이 얼마만큼 늘어났는지는 미지수다. 또 학생들의 머리칼이 자라날 때 담배피고 술먹는 학생들이 늘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궁굼하다. 필자는 한번도 구체적인 근거를 들은 적이 없다.

 

   학생들이 담배를 피고, 술을 마시고, 성인용 나이트클럽에 출입하는 것은 학생들의 머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 일부 아주 소수의 학생들은 악용할 수도 있겠으나 학생들은 거의 상당수가 부모가 있고, 사회의 찌든 때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한 두마디 해보면 금방 그 정체가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밤거리에서 고등학생이 제일 무섭다”는 말은 그만큼 이것 저것 생각하지 않는 학생만의 단순함이 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어린아이도 담배를 피웠다지 않은가? 그렇다고 학생들이 술먹고 담배피우는 것을 용인하자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적어도 학생들의 두발에 대해선 학생들의 행동을 규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지 말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학생들에게 머리 기르라고 해봐라. 길게 잡아 3-4년 지속되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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