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사는문제

코포라티즘과 포퓰리즘

파랑새호 2006. 8. 11. 11:32
LONG
  두 가지 모두 19세기 말 미국 자본주의 변동으로부터 파생했다. 당시 미국 자본주의는 소위 ‘자유방임’ 경제가 갖는 문제, 특히나 극심한 경쟁으로 인한 가격하락, 금융투기 행위 등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완전경쟁과 시장이 경제문제를 자연스럽게 치유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바란과 스위지에 의하면 당시 미국은 ‘증기기관’, ‘철도산업’, ‘자동차산업’에서 일어난 혁신과 남북 전쟁으로 독점이 발생하고 있던 시점이다. 특히나 철도산업은 막대한 고정자본 투자가 특징이며, 이는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주장한 ‘자유로운 시장의 진입과 퇴거’를 쉽지 않게 만들었던 요인이다. 시장으로부터의 철수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에서 자유경쟁의 폐해는 극심하여 손해를 보는 상황에서도 가격이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결국 기업을 파산시키는 과정이 지속되었다.
 
  자유경쟁 자본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가 당시 사회적 과제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코포라티스트는 더 이상 자유방임 경제는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코포라티스트는 자유경쟁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트러스트, 카르텔, 독점에 있다고 판단했다.
 
  Carr parrini와 Martin Sklar가 이같은 사상적 조류에 대하여 정치경제학의 코포라티스트 학파로 명명한 사람이다.  코포라티스트는 거대한 고정자본이 증가하여, 기업의 진입과 퇴출이 용이하지 않게 된 현실을 볼 때, 자유경쟁 경제학 이론은 상업이론으로 폐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코포라티스트의 주된 교리는 트러스트, 카르텔, 독점 등 여하한 내용이건 간에 미국산업에서 진행 중인 합병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들은 기업간의 합병이 경쟁으로부터 기업을 보호하고, 시장의 불안정성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코포라티스트는 경쟁을 사회적 질병에 대한 만병통치약이라기보다는 비효율성의 근원으로 생각했다.
 
  반면  포퓰리스트는 자유경쟁 경제학 이론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포퓰리스트는 시장이 결국은 좋은 결과를 나타낼 것으로 생각했다. 사회의 모든 질병은 완전경쟁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했다. 포퓰리스트는 시장의 자연상태가 외부 강제에 의해 왜곡된다고 바라보았다. 비합법적 독점이나 부패한 정치권력에 의한 신용제한, 금본위제, 인위적인 가격부양조치, 터무니없는 지대나 이자, 불공정 관세 등등의 형태로 시장의 조화를 교란시킨다고 생각했다. 포퓰리스트가 시행하는 치료는 경제 권력을 남용하여 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갖는 것에 대한 정부의 규제나 개입이었다. 포퓰리스트가 협동기업 이론을 정교하게 발전시켰으나, 그들이 생각하는 자본주의는 결국 정직한 하루노동에 대한 공정한 임금, 소상인, 장인의 공동체였다. 포퓰리스트는 정부에게 가난한 농민과 시장권력사이의 불균형을 제거하도록 요구했다. 포퓰리스트는 인플레이션을 통한 미래소득이나 현존하는 자산가치의 파괴를 막기위해 대두된 독점자본주의, 즉 현대자본주의를 반대했다.  포퓰리스트는 화폐공급의 증가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금본위제도를 탐욕스러운 은행가가 국민들에게 강제 부과한 악마적 음모라고 생각한다.  결국 포퓰리스트는 소자산가 계층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들이다.
 
  코포라티스트는 주류경제학자들이나 포퓰리스트가 공정한 시장경제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는 점에 대해 경멸했다. 코포라티스트는 자유경쟁이 초기 상업자본주의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코포라티스트는 시장경제가 자연스럽게 과잉생산의 형태로 파괴적 힘을 초래하며, 그 결과 자본가치가 파괴된다고 판단했다. 코포라티스트는 자본집약적 산업형태는 계속해서 증가할 것이고, 자본가치가 살아있기 위해서는 트러스트나 카르텔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보았다. 코포라티스트는 현대자본주의 발전의 조건하에서 과잉생산, 그것과 관련된 시장의 왜곡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만성적 경향을 갖고 시장을 항상 위협하는 요인으로 바라보았다.
 
  포퓰리스트의 관점에 의하면 기업의 집중은 극악무도한 행위였다. 코포라티스트는 자본주의가 자연스럽게 소수의 거대기업으로 진행된다고 바라보았다. 이는 당시 사회주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사회주의자는 소수의 그룹과 다수의 노동자가 공정한 부의 분배가 불가능하다고 바라보았다. 코포라티스트는 시장보다는 기업이 사회를 관리할 수 있고, 기업만이 경제를 활성화시키면서 풍부한 임금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현재의 입장에서 볼 때 포퓰리스트는 당시 사회의 도도한 흐름을 파악하지 못했다. 정치적 감수성으로 바라보면 포퓰리스트는 사회문제에 대해선 아주 신랄하고 비판적인 사람들일지 모르나 소위 ‘과학’의 결여가 그들의 한계이다. 코포라티스트는 시대적 과제를 소수의 사람들에게 부를 집중시켜 해결했다. 이후 코포라티스트는 케인즈 경제학의 영향으로 노동자의 임금을 증가시켜 유효수요를 확대하고, 독점에 대한 사회적 폐해는 국가기관에 의한 불공정거래 행위 감시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게한다. 코포라티스트는 경제와 사회에 대한 기업의 주도, 국가에 의한 기업의 지원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코포라티스트는 이후 금융자본의 대두로 현실에서 밀려나게 된다.
ARTICLE

 

  최근 한국사회 문제, 특히 경제양극화 현상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많은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런 논의 가운데 사람들의 입에서, 또 주요 언론에서 ‘코포라티즘’과 ‘포퓰리즘’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온다. 이 두 가지는 정책이라 할 수도 있고,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라 할 수도 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고 이해하는 이유는 모두 ‘현재’ 때문이다. 오늘의 한국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코포라티즘과 포퓰리즘이 과연 대안의 내용을 갖고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두 단어의 정확한 기원이나 역사적 배경을 제대로 이해해야 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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