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다윈의 진화론(다윈주의란 무엇인가?)

파랑새호 2010. 8. 7. 11:14

 

1. 다윈주의를 알수 있는 책소개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 알 수 있는 책은 다윈의 저서는 물론이거니와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있다. 먼저 약칭하여 [종의기원]으로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다윈의 저서는 내용상 어렵다.(다윈의 표현을 빌리면 심히 건조하고 복잡하다.) 더군다나 번역상의 문제가 겹쳐 읽기가 힘들었다. 다윈과 동시대의 인물이면서 다윈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헉스조차도 다윈의 책이 난해하여 몇번이고 통독 한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니 동시대인도 아니고 하물며 생물학 전공자도 아니라면 약간의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유시민은 다윈의 저서보다는 리차드 도킨스의 책 [눈먼시계공]을 먼저 읽으라고 권유한다. 도킨스는 특히 지적설계론(창조론)에 대해 초점을 겨누면서 다윈의 진화론을 분자생물학의 연구성과와 함께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사례를 열거하고 있다. 그러나 독자여러분들은 굳이 도킨스의 책을 먼저 읽지 않더라도 다윈의 주장을 다윈이 쓴 글을 통해서 대체로 이해할 수 있다. 다윈주의를 한방에 해결하고 싶은 사람은 [다윈평전]을 권한다. 다윈의 저서는 아니지만 다윈의 거의 모든 것을 서술하고 있는 [다윈평전]을 읽는다면 더 이상 다윈의 진화론은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쉽게도 [다윈평전]두껍다는 단점이 있다.

 

다만 최근에 발행된  [종의기원] (송철용교수의 번역본)은 이전보다 읽기가 훨씬 수월해 졌다.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눈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여기에 다윈 자신이 서술한 자서전도 이미 번역되어 나와있기 때문에(그리고 대단히 쉽다)필독서라 할 수 있다.

 

 

2. 다윈주의란 무엇인가 ?

 

우리들은 대개 다윈의 책을 직접 읽지 않더라도 진화라는 말을 이미 학교에서 배우거나 혹은 잡다한 문헌들을 통해 알고 있다. 다윈주의에 대해서는 모든 생물이 진화의 과정을 거쳐왔다든가 혹은 생물은 진화하고 있다는 표현 등이 그런 사례들이다. 앞으로는 진화라는말 보다는 자연선택이라는 말을 우선적으로 기억해 두는 것이 다윈주의를 이해하는 데 더 구체적이라는 점만 지적해둔다.

 

다윈주의의 핵심내용은 대개 2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방금 언급한 자연선택, 둘째 생존투쟁이다.(혹은 최적자생존) 다윈 이후의 사람들은 위 두가지 중 첫째 내용을 강조하는 부류와 둘째 내용을 강조하는 부류로 분류할 수 있다. 리처드 도킨스의 경우 전자에 해당될 것이다. 사회진화론을 주장한 스펜서 등은 후자의 경우에 해당 될 것이다.

 

자연선택이란 무엇인가? 모든 생물은 생존과 번식을 위하여 주변의 환경이나 조건, 여러 생물과의 관계 등을 고려하여 변화해 왔으며, 앞으로도 변화할 것이라는 생물변화를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생물의 종 분류는 일시적이며, 변동적이다. 고정된 모습으로 변화하지 않는 생물은 없다. 모든 생물은 변종이다. 다윈은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을 먼저 생각하고 고안한 후에 자신의 연구를 진행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생물을 조사하면서 조사의 결과로서 생각했다. 당시의 과학계에서는 중세시대의 영향을 아직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천지의 생물이 모두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다윈은 이러한 창조론을 부정했다. 모든 생물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발생했는가? 이를 설명하는 이론이 자연선택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자연선택이라는 말 앞에 누적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사실 자연선택의 개념에는 누적적인 변화가 포함되어 있다. 어쨌든 도킨스가 누적적인 자연선택이라는 용어를 채택한 것은 일반인들에게 훨씬 더 실감난다.

 

생존투쟁은 생물이 변화하는 가운데, 종족 번식을 위해 개체수 과잉이 필연적이며, 이렇게 과잉상태인 생물은 모두 치열한 투쟁을 통해서 생존한다는 의미를 드러낸다. 투쟁에서 승리한 생물만이 살아남는다. 이는 맬더스의 인구론에서 직접 차용하여 적용한 개념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다윈이 생존투쟁이라는 개념을 적용할 때 생물의 세계에 한정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다윈평전]은 이 같은 주장을 부인한다.

오히려 다윈의 관심은 인간세상의 여러 경우에도 생존투쟁이라는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확실하다. 따라서 사회진화론이 다윈의 진화론을 인간사회로 무리하게 적용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다윈은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점에 대해 [다윈평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흔히 ‘사회다윈주의’는 순결한 다윈주의에 훗날 덧붙은 보기 흉한 혹이며, 다윈의 이미지를 더럽히고 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그의 공책들을 보면 경쟁, 자유무역주의, 제국주의, 인종의 박멸, 성불평등은 처음부터 그의 도식에 들어간 요소들이었음이 명백하다.(다윈평전 15)

 

다윈주의의 의미로 또 하나 제시할 수 있는 것은 방법론에 있다. 다윈은 광범위한 생물, 자연현상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되새기고 분류했다. 다윈은 항상 세고, 분류하고, 키질하고 선별해 왔다.(다윈평전 1027) 흔히들 일컫는 연역법 대신에 귀납법을 채택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정한 명제에 입각하여 특정 목적을 위해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현상을 관찰한 후에 이를 바탕으로 이론을 정립했다. 한마디로 다윈은 동 식물학상 수집된 자료나 해부 분야의 막대한 재료를 축적하여 증명한다. 진정한 자연과학의 방법이다.

 

다윈은 중세 이후 학문의 방법론으로 채택되어 왔던 지적 설계(창조론), 목적론 등에 대해 직접 칼날을 겨눈다. [종의기원]에서는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생물에 대한 당시의 지배논리였던 지적 설계론을 비판하고 있다. 엥겔스는 [종의기원]이 발간된 1859 12월 신속하게 책을 입수하여 읽기 시작해 1211일에는 이 중요성에 대해 맑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목적론은 지금까지 일면에 대해서만 아직 그 내부에서 파괴되지 않고 있었지만, 이것이 이제 달성되었습니다. 자연에서 역사적 발전을 입증했다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장대한 시도가 시행된 것이고, 이런 시도가 이만큼 성공했던 사례도 없었습니다. 고 썼다.  이것에 대해 맑스도 같은 감상을 엥겔스와 라쌀에게 표현했다. 1860년 12월 19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윈의 자연선택에 관한 책. 우리의 견해를 위해 박물학적인 기초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고 평가하고 있다. 라쌀에게 보낸 1861년 1월16 편지에서는 이 책으로 인하여 비로소 자연과학의 목적론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의의도 경험적으로 분석되었습니다.고 서술했다. 맑스는 [자본론]의 매뉴팩처 분석 중에서 다윈을 인용하여 직접 다윈에게 제2판을 증정했다. [다윈평전]에서는 맑스가 다윈에게 책을 줄 때 진정한 숭배자라고 썼다고 기술하고 있다. 

 

다윈의 방법론과 관련된 또 하나의 해석은 우연과 필연의 변증법적 통일을 위한 근거와 직결된다. 물론 다윈은 헤겔의 논리학을 읽지도 않았고, 변증법을 알지 못했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의 내용을 채웠다. 특히 이 점에 주목한 사람은 엥겔스이다.

 

 다윈은 자신의 획기적인 저작에서 매우 광범위한 눈앞에 펼쳐져 있는 우연성의 기초로부터 출발한다. 개개의 종들 안에서의 개체들의 무한한 우연적인 차이들, 이 차이들이 바로 종차를 파괴하는 정도로 까지 증가되었고, 그러한 차이들의 가장 가까운 원인들조차도 오직 극소수의 경우에만 입증이 가능했으며, 이것들이 다윈으로 하여금 생물학에서 모든 합법칙성의 종래의 기초였던 형이상학적 경직성과 불변성에 묶인 종개념을 문제 삼도록 강요하였다. 그러나 종개념 없이는 이 과학 전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과학의 모든 분야들은 그 기초로서 종개념을  필요로 했다. 인체해부학과 비교해부학 태생학, 동물학, 고생물학, 식물학 등, 종개념이 없다면 그것들은 무엇이었던가? 그것들의 모든 결과들은 의문시되었을 뿐만 아니라, 곧바로 폐기되었다. 우연성이 그때까지 파악되어온 방식으로서의 필연성을 허물어뜨렸다. 필연성에 대한 그때까지의 관념은 더 이상 기능할 수 없게 되었다. 이 관념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과 현실에 모순되는 인간의 자의적 규정을 자연에 대해 법칙으로 강제로 부과하는 것이고, 이로써 살아있는 자연의 모든 내적 필연성을 부인하는 것이며, 혼돈된 우연의 나라를 보편적으로 살아있는 자연의 유일한 법칙이라고 선포하는 것이다.(자연변증법 224)

 

우연적이면서 필연적이라는 개념, 통일성. 형이상학은 이 둘을 서로 단연코 배제하는 규정으로 취급. 변증법에서는 이렇게 사고하지 않는다. 우연성을 밀어내려는 가장 극단적인 시도는 결정론. 프랑스 유물론, 자연과학자들이 여기에 해당됨. 우연적인 것은 그것이 우연적이기 때문에 하나의 근거를 갖고 또한 바로 그것이 우연적이기 때문에 어떠한 근거도 갖지 않는다는 명제, 우연적인 것은 필연적이며, 필연성은 자기 자신을 우연성으로 규정하고, 그리고 다른 한편 이 우연성은 오히려 절대적 필연성이라는 명제를 제시하면서 등장

 

 

3. 다윈주의에 대한 평가

 

다윈이 절대적 공헌이라고 해야 할 자연선택 이론이 갖는 의미에 대해선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인정하고 있다. 과학을 외면하는 극우 기독교 맹신주의자들로부터의 공격이 있을 뿐이다. 세상만물이 모두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창조론은 생명체에 대해선 지적설계론으로 나타난다.  다윈은 자서전에서 윌리엄 페일리가 [자연신학]이라는 책에서 밝힌 시계를 만든 시계공이 있듯이 인간의 눈과 같은 복잡한 기관들은 자연적인 과정으로는 생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적인 설계자에 의해 창조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페일리가 제기한 바와 같은 자연설계에 대한 주장은 나도 한때 최종 결론으로 여긴 적이 있지만, 자연선택 법칙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시들해지고 말았다. 예를들어 이제는 쌍각조개의 아름다운 경첩부분을 보고 사람이 만든 문의 경첩처럼 지능을 가진 존재가 그것을 만들었다고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유기체의 다양성이나 자연선택의 작용에 바람의 진로보다 더 훌륭한 설계가 내장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모든 자연현상은 고정불변의 법칙에서 나온 결과이다.([찰스다윈 자서전] 다윈지음, 이한중옮김, 갈라파고스, 2003, 103)

 

미국 테네시주에서 있었던 유명한 스코프스의 원숭이 소송(Scopes Monkey Trial)은 다윈이 [종의기원]을 발간한 1859년으로부터 66년이 경과한 1925년에 일어났다. 존 스코프스는 고등학교 생물교사였는데 수업시간에 진화론을 강의한 죄로 기소가 된 것이다. 스코프스는 100달러의 벌금형에 처해졌다. 이로부터 다시 62년이 경과한 1987년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창조론은 종교에 가까우므로 학교에서 창조론 교육을 강제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형식상 진화론이 승리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미국에서 진화론과 지적 설계론은 지금도 학교교육의 영역에서 치열한 투쟁 중에 있다. 21세기를 훌쩍 넘겨버린 현재에서도 창조론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으며, 다윈의 자연도태는 여전히 공격 받고 있다.

 

지적 설계에 맞선 자연선택은 사실 진화론의 전부는 아니다. 생존투쟁이론은 여전히 진화론의 한축을 차지하고 있다. 진화론에 대한 비판은 엥겔스가 지적한 내용을 참조하는 것이 좋다. 엥겔스가 비판한 내용은 대개 두가지 이다. 첫째 생물진화를 진행시킨 원인으로서의 생존투쟁, 자연선택에 관한 것, 둘째, 맬더스 인구론의 무비판적 수용에 대한 문제이다.

 

먼저 첫째에 대해 엥겔스의 [자연의 변증법]각서와 단편의 생물학 속에 생존투쟁에 대한 1절을 서술하고 있다. (같은 내용이 엥겔스가 표트르 라빌로비치 라빌로프에게 보낸 편지에도 나타난다.) 엥겔스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 놓는다.

 

다윈이 자연선택 혹은 최적자의 생존에서 완전히 연결되지 않고 있는 다음 두가지 내용을 혼동하고 있다. 이것이 그의 오류이다.

(1) 개체수 과잉의 압박에 의한 선택. 그 경우에는 최강자가 대개는 먼저 살아남지만  최약자도 많이 생존했다.

(2) 변화하는 여러 사정보다 더 큰 적응능력에 의한 선택. 이것은 살아있는 것은 여러 사정에 한층 잘 적합한 상태라는 점을 드러내지만, 그러나 이 경우 적응은 전체적으로 본다면 진보도 될 수 있고, 퇴보도 될 수 있다.(예를들어 기생생활의 적응은 언제라도 퇴보로 간주된다.) 요점. 생물진화론에서 어떤 진보도 모두 동시에 퇴보이다. 진보는 일방적인 진화로 고정되는 것이며, 그 이외의 많은 방향으로 진화의 가능성을 배제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러나 근본법칙인 것이다.

 

여기서 엥겔스는 진화의 과정에서 생존투쟁을 일면적으로 이해하면 안된다는 점을 지적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생명은 자연물의 상호작용이라는 점에서 조화와 충돌을 포함하고 있다. 생명있는 자연물은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협업과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투쟁을 포함한다. 따라서 자연에서 조차 일면적인 투쟁의 측면만을 부각시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역사의 발전과 여러 사건의 교차, 이를 바탕으로 한 부 전체를 진부하게 한 생존투쟁의 공언으로 포괄해 버렸다는 것은 진실로 유희에 불과하다.

 

또한 엥겔스는 기술한 [안티듀링론] 1절 중에서 다윈이 변이의 원인에 대해 연구가 약하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저작집, 578, 박종철출판사 참조)

 

거기서 자신의 발견이 작용을 미치는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한 것,그 발견을 종의 변이의 유일한 지렛대로 삼은 것, 개체 변이가 일반화되어 가는 형식에 지나치게 신경 쓴 나머지 그러한 개체 변이가 반복되는 원인들을 소홀히 다룬 것 등은 다윈의 오류이지만 이 오류는 어떤 진정한 진보를 이루어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통된 것이다.

 

2가지 문제에 대해 엥겔스는 같은 문서중에서 듀링이 다윈의 생존투쟁설은 맬더스의 인구론을 생물계로 확산시킨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한 것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때에 다윈을 옹호하면서도 약점을 이하에서와 같이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다윈은 다만 이렇게 말할 뿐이다.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는이론은 동물계와 식물계 전체에 적용된 맬더스의 이론이다. 잘 살피지도 않고 소박하게 맬더스의 학설을 받아들인 다윈의 실수가 아무리 큰 것이라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것을 자연에서 감지한 데는 어떠한 맬더스의 안경도 필요치 않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일목요연한 사실이다. 말하자면, 생존을 위한 투쟁 자연이 헤프게 산출해 내는 씨의 수는 엄청나다는 것과 어쨋거나 성숙에까지 도달할 수 있는 씨의 수요는 미미하다는 것 사이의 모순 ; 실제로 대부분 어떤 땔는 극히 잔인하- 생존을 위한 투쟁에 의해 해결되는 모순. 그리고 리카도가 임금 법칙을 증명하는 데 이용한 맬더스의 논거가 이미 오래 전에 자취를 감춘 뒤에도 임금 법칙이 그 타당성을 잃지 않고 있듯이, - 맬더스의 해석 같은 것이 없어도 생존을 위한 투쟁은 자연에서 진행될 수 있다. (저작집, 576~77, 박종철출판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