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위대한 야성과 생활력(그리스인 조르바)

파랑새호 2011. 2. 17. 13:16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역, 열린책들, 2001년 (※ 주의 ; 아래에 표기된 쪽수는 필자가 갖고 있는 2001년판의 쪽수입니다. 블로그 만들어놓고 글쓴지 하도 오랜만이라 최근 읽은 책이 아니고, 예전 읽은 책 독후감을 썼습니다. 최근에 읽은 책에 대한 독후감도 시간을 내서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윤기선생은 니코스 카잔차키스라는 이름이 너무나 생소하기 때문에 다들 카잔차스키로 발음한다고 하면서 가장 첫 키스를 빨리 읽으면 원음에 가까운 카잔차키스가 된다고 했다. 아직도 여전히 생소하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그리스인 조르바]가 내뿜고 있는 매력은 생소함을 단연 뛰어넘어 카잔차키스는 몰라도 조르바는 잊지 못하게 만든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은 조르바가 아니다. 인텔리이면서, 작은 광산을 운영하는 일종의 부르주아이다. 주인공은 주인공의 친구 표현에 의하면, 책벌레(10), 대가리에 잉크를 뒤집어 쓴 채 종이를 씹으면서사는 인텔리이다. 불교에 아주 심취한 사람이기도 하다. 다음과 같은 주인공 자신에 대한 표현.

 

     내 언제면 혼자, 친구도 없이 기쁨과 슬픔도 없이 오직 만사가 꿈이라는

       신성한 확신 하나에만 의지한 채 고독에 들 수 있을까? 언제나 욕망을

       털고 누더기하나 만으로 산속에 묻힐 수 있을 까? 언제면 내 육신은 단지

       병이며, 죄악이며 늙음이며 죽음이란 확인을 얻고 두려움 없이 숲으로

       은거할 수 있을까?(32)

 

주인공은 금욕적인 삶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플라톤적 사고에 빠져있다.

 

     세상 만사에는 숨은 뜻이 있으려니 싶었다. 사람, 동물, 나무, 별들 모두가

      상형문자, 그 상형문자를 해독하려 하고 그 의미를 생각하는 사람에게

      화 있을진저. 보는 것 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55)

    

그는 자신의 삶의 양식을 바꾸기 위해 갈탄광운영을 해보기로 한다. 주인공의 이러한 결심은 첫째로는 그동안의 자신의 삶이 그림자만 보고서 만족하는것이라고 판단하고 본질 앞으로가기 위함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여전히 주인공의 머리 속에는 관념적이면서 낭만적인 생각이 있었다.

 

     내게 로맨틱한 계획이 하나 있었다. 갈탄광이 성공하면 모든 것을 서로

    나누어 갖고, 형제들처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는 일종의 공동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새로운 종교집단, 새로운

   생활의 기폭제를 구상해 왔다.(63)

 

   나는 양극이 화합할 길을 모색하며 지상의 생활과 하늘의 왕국을

동시에 얻는 욕망에 사로잡혔다.(64)

 

회사 운영을 공동체 조직운영과 동일시하는 것은 사실 어설픈 진보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형상이다. 구체적인 삶 속에서 노동자들은 언제나 자기중심적이며, 계산적이다. 노동자들과 함께 공동체를 운영하겠다는 사고는 생활속에서 철저하게 체득한 구체화된 내용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된다. 조르바는 주인공의 이런 취약점을 온 몸으로 느낀다. 조르바는 어떤 사람인가? 주인공은 조르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는 살아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 였다.(19)

 

     조르바는 학교 문앞에도 가보지 못했고, 그 머리는 지식의 세례를 받은

      일이 없다. 하지만 그는 만고풍상을 다 겪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 마음은

      열려있고 가슴은 원시적인 배짱으로 고스란히 잔뜩 부풀어 있다. 우리가

      복잡하고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조르바는 칼로 자르듯, 알렌산드

     로스   대왕이 고르디오스의 매듭을 자르듯이 풀어낸다. 온몸의 체중을

     실어 두발로  대지를 밟고 있는 이 조르바의 겨냥이 빗나갈리 없다.(74)

 

조르바는 노동자들에게 온정적인 주인공을 향해 주장한다.

 

     우리는 평등하다. 우리에겐 똑 같은 권리가 있다, 이 따위 소리는 하면

     안돼요. 그러면 당신에게 달려들어 당신 권리까지 빼앗고 당신 빵을

     훔치고 굶어 죽게 할거요.(65)

 

     두목이 세게 나오면 인부들은 두목을 존경하고 일도 잘합니다.

     두목이 물렁하게 나오면 인부들은 일을 몽땅 두목에게 밀어버리고

     나 몰라라 한단 말입니다. 아시겠어요?(65)

 

     인간이란 짐승이에요.(65)

 

말하자면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자로서의 자신의 입장을 제대로 확립하지 않고서는노동자 들에게 다가설 수 없다는 주장이다. 경영자는 노동자와 다른 입장, 다른 조건에서 만나야 한다. 구체적으로 인간과 직접적이고도 확실한 접촉(66)을 하지 않고, 관념으로만 만나다 보면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밖에 조르바가 주장하는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이나 사물의 목적은 쾌락을 창조하는 것이었다.(308)

 

     육체란 짐을 진 짐승과 같아요. 육체를 먹이지 않으면 언제가는 길바닥에다

      영혼을 팽개치고 말거예요.(42)

    

하느님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데 굶어 죽으면서 하느님께

감사하는 건 미친짓이다.(73)

 

     새 길을 닦으려면 새 계획을 세워야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합니다. 내일 일어날 을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309)

 

인간의 머리란 식료품 상점과 같은 거예요. 계속 계산 합니다.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좀상스러운 가게주인이지요. 가진걸 다 걸어 볼 생각은

않고 꼭 예비금을 남겨두니까. 이러니 줄을 자를 수 없지요.(339)

 

주인공은 조르바가 늙은 창녀 오르탕스부인에 대한 태도를 통해서도 많은 것을 느낀다. 조르바의 오르탕스 부인에 대한 행위나 여성에 대한 주관들은 물론 얼핏 판단할 때 남성중심적이고 향락적인 듯 한 모습이다.  사실 조르바에게 삶은 육감적이고 구체적이며, 감성이고 본능이다. 조르바는 냄새로 사람을 판단한다.

 

     나는 사람에게 제 나름의 냄새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 냄새는 아주

     복잡하게 섞여 있어서 별로 의식하지도 않은 채 살고 있고, 이건 누구

     냄새, 저건 누구 냄새, 이렇게 구별하기도 어려워요.(170)

 

     우리가 아는 건 고약한 냄새하나, 소위 인간성(즉 인간의 냄새라는

겁니다.)이라는 냄새가 하나 있다는 겁니다.(170)

 

주인공에게 있어 조르바는 의미가 풍부하고 흙냄새가 나는것이며, 존재의 심연으로부터 그런 느낌을 갖게 되는 한, 그런 말들이 따뜻한 인간미를 지니고 있다는 증거이고, 반면 주인공 자신의 말은 종이로 만들어진 것들에 지나지 않고, 피 한방울 묻지 않은 것(이상 317)에 불과했다. 주인공은 고백한다.

 

     정확한 직감과 독수리 같은 원시의 모습을 함께 지닌 그는 지름길을

    잡아 숨 한번 차지않고 다른 사람들의 노력의 정상에 이르러 거기에서

    더 나아가기도 했다.(331)

 

   우리는 교육받은 사람들의 이성보다 더 깊고 더 자신 만만한

    그의 긍지에 찬 태도를 존경했다. 우리들이라면 고통스럽게 몇 년을

    걸려 얻을 것을 그는 단숨에 그 정신의 높이에 닿을 수 있었다.(345)

 

조르바는 현재에 충실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낙천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자기 생업에 충실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대개 노동으로 단련된 사람들이다. 이들 노동자들에게는 생존이라는 절박한 과제로 인하여 늘 이기적인 요소들이 있지만, 그만큼 다른 노동자들의 삶이 고달프다는 것도 잘 안다. 우리는 늘 노동자대중의 표피적 삶의 이기심만을 볼 수밖에 없지만, 그들에게는 저 밑바닥 깊숙한 곳에 같이 노동하며 고생하는 사람들에 대한 진한 애정이 숨겨져 있다. 말하자면 조르바는 자신의 삶에 충실한 노동자계급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인간의 삶을 영혼으로 만난다면 우리는 조르바 같은 사람에게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다. 인간의 삶, 생활은 그 모든 지식, 철학, 종교의 원천이며, 전부이다.